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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역사  
박물관장
2009-06-01 조회 | 1932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가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스포츠대회이다. 
본래 올림픽 경기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경기(祭典競技)의 하나로, 종교·
예술·군사훈련 등이 삼위일체를 이룬 헬레니즘 문화의 화려하고도 찬란한 결정체였다. 
여러 신을 섬기던 각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올림픽 대회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면 올림피아로 
몰려들어 신전에 참배하며 제례를 지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림픽 경기가 훈련의 성격을 
띠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고대올림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았지만, BC 776년 앨리스 출신의 코로 에부스가 
스타디온 달리기에서 우승했다는 문헌상의 기록을 근거로 통상 이때를 올림피아의 원년으로 본다. 
이후 1,200여 년 동안 계속되다가 그리스가 로마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황제는 올림픽 제전을 이교도들의 종교행사로 규정, 
AD 394년 폐지를 명령하는 칙령을 선포함으로써 바로 AD 393년에 열린 제293회를 마지막으로 고대올림픽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경기 종목은 장거리 및 단거리 경주, 권투, 경마, 마차 경주, 트럼펫 경연이다. 
승자에게는 월계관이 씌어졌으며, 500드라크마의 상금이 주어졌다. 또한 공개적인 축하행사에서 귀빈석을 
차지할 수 있는 권리와 평생 연금을 받았다.

그후 약 1,500년 동안 중단되었던 고대올림픽 경기는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on)의 노력으로, 
1894년 6월 23일 파리의 소르본 대학(파리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유럽 각국의 대표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찬성을 얻어 근대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당초 그의 의도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 패하여 사기가 
저하된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고, 아울러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제전을 통하여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상호이해와 우정을 다지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는 데 있었다.

1896년 유서깊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13개국 311명으로 ‘인류평화의 제전’
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걸맞지 않은 작은 규모였다. 올림픽이 국제대회로서 면모를 갖춘 것은 1908년 제4회 
런던대회 때 부터였다. 이 대회에는 22개국 1,999명이 20개 종목에 참가함으로써 대회규모가 획기적으로 
확대되었는데, 각국이 처음으로 국기를 앞세우고 참가하였으며 경기규칙 제정, 본격적인 여자경기종목 채택, 
마라톤 코스의 확정 등 조직과 관리면에서 체계가 갖추어졌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이 사업의 실현을 위해서 단지 산파역할을 하였지만, 그의 한결같은 
염원은 이 대회가 영원한 성공을 거두어서 아름다운 스포츠정신이 세계 어느 곳에나 보급되어 온 세계의 
청년들이 진실로 평화를 사랑하며 인생에 대한 존엄성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올림픽 운동은 세계에 하나의 이상을 심어주는 일이며, 그 이상은 바로 현실생활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기쁨, 미와 교양, 가정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근로, 이상 3가지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쿠베르탱은 올림픽 경기의 이상을 인간의 완성은 물론 세계의 평화에 두었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교류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 이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림픽 경기의 
아이디어는 꿈이 아닌 합리적인 정신의 소산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함에 따라 올림픽 경기의 숭고한 정신은 점차 
퇴색하여 그동안 제1·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3번이나 중단되었고, 최근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테러가 
일어나는가 하면 대회를 보이콧하는 사례까지 빚고 있다.

1988년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된 제24회 올림픽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22회 모스크바 대회 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자유진영 국가들이 불참하는 사태를 빚었으며, 제23회 로스앤젤레스 대회 때는 
그 반작용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불참사태를 가져왔다. 그러나 동·서 냉전으로 인한 분단의 현장인 서울 올림픽 
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과 쿠바 등 몇 나라를 제외한 동·서가 한자리에 모이는 대축전이 되었으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대회,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 대회에 이어 제27회 대회는 2000년 9월에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렸으며, 2004년 제28회 대회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린다. 오늘날 세계각국의 스포츠인들은 근대올림픽이
 창설된 6월 23일을 ‘올림픽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동계대회는 하계대회와 별도로 4년에 한 번씩 겨울기간에 열린다. 제1회 대회는 1924년 프랑스의 사모니에서 
개최되었으며, 16개국 258명의 선수들이 빙상·스키·아이스하키·봅슬레이·군대정찰경기 등 5개 종목에 참가하였다. 
한국은 제1·2·3·4·6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여하였다. 1994년 제17회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 
1998년 제18회 일본 나가노 대회에 이어 2002년 제19회 대회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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